너의 집에서 나오기 위해 작은 문을 열었을때 좁은 계단 위로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펼쳐져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했다.

삼차원의 공간 속에는 네가 그린 그림들이 죽은듯이 펼쳐져있었다. 기분나쁘게 내리꽂히는 햇빛 아래로 태양을 향해 혀를 쭉 빼물어든 해바라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틈 사이로 입을 가르고 태양을 향해 손을 내밀듯 아우성치는 해바라기떼를 바라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말라 비틀어져 버릴것만 같은 그 감정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나 홀로 품고왔던 감정이 그 그림 속에 있었다. 너의 그 꽃무덤 길을 따라 걸으며 바짝 말라 죽어버린 시체들을 보았다. 그 꽃길을 보며 느낀 안타까움과 불쾌함과 기묘한 동질감이 나를 괴롭게했다.

나는 다시 그 길을 빠져나와 네가 사랑하는 여자를 죽였다.
닿지않을 사랑을 갈구하며 말라죽어가는 그 모습이 역겹고 불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여자를 죽이고 달아나려던 순간 그 여자의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싶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굶주린 너라면 내 일그러진 사랑도 달게 받아먹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를 맴돌며 너를 자극하기 시작했고 너는 동요했다. 마치 내가 주는 식사를 기다리는 개처럼 나에게 길들여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죽은 여자에 대한 그리움보다도 내가 너에게 주는 독이 더 달콤한 것 처럼 굴기 시작했다.

너를 길들이는 것은 퍽 즐거웠다. 슬픈 것은 내가 온전하게 사랑할 수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깨달음과 회의감에 몸서리 치다가,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내가 죽어 없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내가 준비한 선물을 거부했다. 그 거부가 기뻤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이미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죽음을 준비했고 너는 멈출 수 없다면 나와 함께 가기를 원했다. 사실 내가 떠난 후 어딘가에서 사랑을 구걸하고있을 네 모습따위는 생각하고싶지도 않았으니, 함께 간다면 더없이 좋은 결말이 될 터였다. 나를 바라보는 네 눈길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서로가 외로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관계일 뿐이지만 너와 같이 죽을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 때 잠에서 깨지않았더라면 너와 나는 진짜로 죽을 수 있었을까?

깨고난 뒤, 함께 삶을 정리하던 그 즐거운 기억과 나를 바라보던 그 모습이 생각나 일어나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다시 잠들고 싶었다.

그 해바라기
너의 그 기묘한 그림들.

이상한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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